일반史家들이
기독교 역사연구자들에 대해
호교론적이라고 비판을 해도,
일면 그 말이 일리가 있어도,
나 역시 목사인지라
되도록 옹호하고 지지하는 편에 서있다.
어쩔 수 없는 노릇아닌가?
다만, 1907년 대부흥운동
그것이 정말 대부흥이었다면...
왜 1909년 이후 백만인구령운동이 필요했으며
왜 부흥의 흐름속에 성장은 자연스러운 것인데
18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독교가
왜 1910년대 이후 3.1운동을 전후하여
오히려 쇠퇴하였는가?
일제의 탄압때문이었다고 말하기에는
혹독한 탄압속에 성장한 초대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
앞뒤가 맞지 않는다.
왜?
이러한 질문과 의문들이
내 연구주제의 출발이었다.
역사의 언저리에 남겨진 벽돌 한 장 붙들고
씨름할 뿐이다.
초기 한국기독교의 S.W.O.T 분석없이
어떻게 제대로 된 전략을 이야기하고
한국교회의 미래를 말할 수 있겠나?
그런데 이게 쉽지않은 일이다.
연구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않다.
몇 사람의 기독교사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재탕, 삼탕하는데 그친다.
여러가기 이유가 있겠지만
내가 공부하며 느낀 점은
묻혀있는 자료들을 발굴해내는 일 뿐 아니라
이미 있는 자료들을 잘 분석하고 다듬어 내놓는 일 조차도 녹록치않다.
우선은 초기 한국기독교의 자료들이
대부분 외국어나 다름없는 19세기 한글과 20세기초 국한문으로 되어있고
거기에 한문은 필수다.
시기나 사건별 자료에 따라 영어, 일본어, 중국어는 덤이다.
지금쓰는 일본어와 20세기 초 일본어는 또 다르다.
기존 연구자가 성과에 매몰되어
자료를 적당히 비틀어놓으면 독자들은 이를 분별해 낼 능력이 없다.
앞으로의 한국 기독교를 위해
꼭 필요한 연구분야인데
현재의 연구자뿐 아니라 지원자 역시 턱도없이 부족하다.
2-30대의 젊은 사역자들이 필요한 이유다.
뭐하나?
어쩌면 연구시장의 블루오션인데
내가 적어도 30대 전도사라면
이 일에 인생을 걸어보겠다.